개인회생가능할까요

이 여권이 그에게 주어졌을 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 위장 여권인가?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조국을 떠난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이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 여권은 그가 저격수라고 불리는 바로 그 자라는 것을 밝히는, 교활하기 이 를 데 없는 표시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개인회생가능할까요 개인회생가능할까요 개인회생가능할까요 개인회생가능할까요 아닐 것이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한 일일 것이다. 보란은 근거도 없는 공포감 속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살인과 보복과 적들의 감시의 눈초리 가 있을 뿐이었다. 보란은 옆자리에 앉은 창백한 여자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면서, 그녀가 느끼는 공포와 그 자신의 공포가 똑같이 황당 무계한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애를 써봤다. 그 생각이 정말 황당 무계한 것일까? 마피아와의 이 전쟁이 그의 모든 세계를 장악해 버 리고 다시 그것을 찢어발기고, 형체도 알 수 없는 공포를, 육체적인 현실감이 있는 공포가 아니라 더 참혹한 정신적 공포를 영원히 그에게 짐 지운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모든 분 노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는 그 자신의 모든 용기와 정의까지도 팽개쳐 버리고 두려움에 떨 면서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투항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는 말없이 서류 가방을 끌어내려 무릎 위에 놓고 여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객기는 이제 활주로 바로 바깥쪽에 서 있었다. 엔진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조종실의 문이 열리 고 보란이 앉은 쪽을 담당한 스튜어디스가 다시 나타났다. 열린 문 저쪽에서 제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 길 마틴이라고 소개했던 사내를 슬쩍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문은 다시 닫 혔다. 스튜어디스도 자기 좌석에 가 안전 벨트를 맸다. 그녀 역시 길 마틴을 향해 미소를 보 냈다. 마틴이라는 사내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도 응당 나타내야 할 표정 조차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보란은 다시 그 사내에 대한 의문에 휩싸였다. 여권 문제는 닥치면 해결하기로 하고 운 선은.... 그는 코트의 윗주머니에 여권을 쑤셔 넣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내려진 거의 무의식적인 결정이었다. 잠시 후 여객기는 이륙했다. 둘레즈 공항은 점차 희미한 점으로 변하더니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선을 돌리며 보란은 좌석의 질 좋은 쿠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정말 몇 시간뿐이지만 마음 푹 놓고 휴식을 취해도 좋을 것이다. 경찰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허락했다. 유명 인사임이 틀림없는 길 마틴이 공항에 늦게 도착함으로 인해 보란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덕을 보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저절로 감탄 이 새어 나왔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길 마틴과 그는 많이 닮아 있었다. 보란은 관제탑과 조종사 사이에 오고가는 교신 내용을 눈에 보듯 환히 떠올릴 수가 있었 다. "경찰이 사람을 찾고 있다. 30대의 남자, 키가 크고 검은머리에 구레나룻을 하고 단단한 체격에 차가운 밤색 눈동자의 사내다. 그는 아마 파리행 여객기의 마지막 탑승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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